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울리히 루델 (문단 편집) === 전적 === 혼자서 '''2개 전차사단과 1개 함대를 섬멸'''했다. * 519대의 전차 격파 * 700대의 트럭 격파 * 150대의 대공포와 포대 격파 * 100개 이상의 다리, 철도, 벙커 파괴 * 4량의 장갑열차 격파 * 소련군 [[강구트급 전함]] "10월 혁명"(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) 반파, [[마라(전함)|마라]](Marat) 격침(그것도 폭탄 '''한방'''으로).[* 그런데 정작 [[마라(전함)|마라]]는 1.4톤 철갑폭탄으로 완전 격침됐다고 여겨졌으나, 침몰 후에도 하필 항구에서 가라앉는 바람에 포탑 2기가 여전히 사용 가능했으므로, 응급복구를 거쳐 항구 바닷물에 떠 있는 해상포대로 운용 방식을 변경한 후 '''레닌그라드 해방까지 계속해서''' 인민의 불벼락을 내렸다. 이후 마라의 폐함은 1952년에 이뤄졌지만, 격침 당시 항해능력과 동력 및 사격관제능력을 몽땅 상실해서 전함으로서의 능력은 몽땅 잃어버린 점을 따지자면 격침 스코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. 즉, 마라가 독일군을 괴롭힌 것은 격침된 배를 근성으로 우려먹은 소련이 대단한거지 루델이 어중간하게 격침시킨 탓이 아니다. 에초에 수심이 깊은 바다였으면 빼도박도 못할 격침 후 침몰이다.] * [[뤼초(중순양함)|중순양함 페트로파블롭스크]] 격침[* 원래 독일이 건조한 [[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]] 5번함이었으나(이때는 이름도 뤼초였다.) 전쟁 이전 소련에게 판매된 탓에 전쟁 내내 소련 해군 소속으로 활동하였다.][* 단 이후 페트로파블롭스크는 견져올려진 뒤 전선에 복귀했다.] * [[민스크급 구축함]] 민스크 격침 * 70여척의 상륙용 함정 격침 * 적 항공기 11기 격추[* 지상파괴가 아니라 격추임에 주목. 이것은 슈투카로 거둔 전과가 아닌데, 루델은 대지공격용 [[Fw 190|Fw 190 F8, D9]]을 타고 출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얻은 전과다. 참고로 항공전에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격추수 5기 이상이여야 에이스로 칭하는데 루델은 이미 공격기 조종사로서의 전과를 제외하고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전과만 보더라도 11기 격추이기 때문에 에이스로 분류된다.] - [[LaGG-3]] 2기 및 [[Il-2]] 등 격추 * 그외 비상착륙 등의 방법을 사용해 적진에서 고립된 12명의 아군과 6명의 슈투카 조종사들을 구출 총 출격횟수만 따져도 2,530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. [[파일:attachment/hans_ulrich_rudel.jpg|width=300]] 정복을 입은 대령 시절의 한스 울리히 루델. [[독일 제3제국]] 최고의 [[무공훈장]]인 [[철십자 훈장#s-5.3.4|황금 다이아몬드 백엽 검 기사 철십자 훈장]]이 돋보인다. 원래 전사자 12명을 선정하여 수여될 예정이었으나 정작 생존자인 루델에게 1945년 1월 수여되었다. 수여자는 루델 단 한 명뿐이다. 만든 것도 6개밖에 없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